"올 연말 다이어리를 출시할 계획이다."
인터뷰 기사에 올라간 이상, 그것은 공개된 약속이었습니다. 연말이 오기 전에 다이어리가 나와야 했습니다. 소재 개발, 파트너 조율, 제품 설계, 크라우드펀딩 준비가 같은 해 안에 이루어졌습니다.
첫 번째 제품이 다이어리인 이유
제품을 선택할 때 질문은 하나였습니다. 커피박 재생가죽 소재의 기능을 가장 잘 체감할 수 있는 폼팩터가 무엇인가.
다이어리는 매일 손으로 만지는 물건입니다. 책상 위, 가방 속, 손안에 있습니다. EP.04에서 다룬 소취 기능과 커피박의 은은한 향은 거리를 두고 감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까이, 자주 접해야 체감됩니다. 하루에도 여러 번 손이 닿는 다이어리는 이 두 가지를 전달하기에 적합한 물건이었습니다.
내구성 요건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점도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구두의 경우 장시간 착용, 반복 마찰, 땀 등 극단적인 조건을 견뎌야 합니다. 다이어리 표지는 그보다 완만한 환경에서 쓰입니다. 소재 개발 초기 단계에서 가장 엄격하지 않은 내구성 조건부터 시작하는 것이 합리적이었습니다. 기능을 증명하고, 데이터를 쌓은 뒤, 더 가혹한 조건으로 확장하는 순서입니다.
연말이라는 타이밍도 맞았습니다. 다이어리는 매년 연말에 수요가 집중되는 품목입니다. 인터뷰 약속을 지키는 동시에, 시장 출시 시점을 자연스럽게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제품을 설계하는 일
소재를 개발하는 것과 제품을 만드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소재는 물성을 최적화하는 과제이고, 제품은 사람이 쓰는 물건을 완성하는 과제입니다. 소재의 특성이 실제 사용 맥락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직접 검증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이 제품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다이어리 표지를 소재 시트로만 보는 것과, 1년 동안 매일 손에 닿을 물건의 일부 로 보는 것은 다릅니다. 크기, 두께, 펼쳐지는 느낌, 내지와의 조화. 이것들은 소재 개발 단계에서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던 부분들입니다. 표지 재료가 결정된 이후에도 제품으로 완성하기까지 결정해야 할 사항이 남아 있었습니다. 소재 설계와 제품 설계는 거의 동시에 진행해야 했습니다. 시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소재 기준이 다시 수정됐습니다. 표지의 유연성이 충분하지 않으면 다이어리를 펼칠 때 표지가 저항을 줍니다. 너무 유연하면 형태 유지가 안 됩니다. 소재 개발팀과 제품 설계에서의 과정이 반복됐습니다.
시제품과 양산품은 다릅니다
크라우드펀딩이 목표를 달성하면서 양산 준비에 들어갔습니다. 시제품을 만들 때와 달랐습니다. 시제품은 조건을 맞추는 과정이고, 양산은 그 조건을 반복하는 과정입니다. 반복의 과정에서 시제품 단계에서는 보이지 않던 문제가 나왔습니다.
납기 일정이 예상보다 빠듯했습니다. 연말 출시 약속이 있었고, 크라우드펀딩 서포터에게 전달해야 하는 시점이 있었습니다. 양산 공정을 조율하는 파트너와의 커뮤니케이션에서 일정이 조정되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처음 만드는 것에는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있다는 것을 시간 압박 속에서 배웠습니다. 또한 다이어리 표지의 재단과 제본 과정에서도 수율 문제가 있었습니다. 재생가죽 시트를 일정한 크기로 재단할 때 가장자리 처리 방식에 따라 완성도가 달라졌습니다. 시제품 단계에서는 수작업으로 처리했던 부분이 양산 단계에서는 공정 기준이 필요했습니다. 기준을 세우는 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가격을 정하는 방법
다이어리 가격을 정할 때 기준은 두 가지였습니다. 소재와 공정의 원가, 그리고 시장에 이미 있는 가죽 다이어리의 가격대입니다.
재생가죽은 천연가죽보다 단가가 낮습니다. 원료 구조의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차이가 소비자 가격에 반영됩니다. 커피박 재생가죽 다이어리는 같은 품질 수준의 천연가죽 다이어리보다 다소 저렴한 수준으로 책정됐습니다. 크라우드펀딩 가격과 이후 정가의 차이도 설계했습니다. 크라우드펀딩 참여자는 얼리어답터이면서 동시에 이 소재를 먼저 경험해줄 사람들입니다. 이 선택에 감사하는 방식이 가격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